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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청각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보청기는 소리를 전달하는 단순한 보조기기라는 인식이 여전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접목되며 단순한 소리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솔루션으로서의 가치가 조명되어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요한 축으로 인식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보청기제조사협의회 협회장인 디만트코리아의 박진균 대표를 만나 보청기 산업의 최신 동향과 AI 기술 적용, 국내 시장의 현실과 과제, 그리고 협회장으로서의 비전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 보청기는 단순히 소리를 증폭해 주는 기계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로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AI가 접목되면서 보청기는 단순한 소리 증폭 장비를 넘어, 사용자의 뇌가 소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까지 분석하고 지원하는 기기로 발전했다. 디만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뇌 연구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해왔고, 올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AI 보청기를 출시했다.”
― AI와 결합하면서 보청기 기술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가.
“사실 처음부터 AI 자체를 목표로 개발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디만트는 오래전부터 ‘뇌’ 연구에 집중해 왔다. 과거 보청기 업계가 주로 소리 자체, 즉 음성이나 소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주력했다면, 디만트는 뇌가 소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인지하느냐에 주목해왔다.
뇌 연구를 이어온 결과, 자연스럽게 AI 기술을 접목하게 됐다. 소리를 아무리 잘 증폭하더라도 결국 뇌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 디만트는 뇌가 소리를 보다 잘 구분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보청기 분야에서 빠르고 정교한 AI 적응 기술을 갖춘 몇 안 되는 회사라고 자부한다.”
“국내 시장도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 규모로 보면 여전히 해외 선진국들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특히 ‘보청기는 노인이 쓰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해 보급률이 높지 않다. 통계적으로 만 65세 이상 어르신 10명 중 약 8명이 경도 이상의 난청을 겪고 있지만, 실제로 보청기를 착용하는 비율은 낮다. 해외에서는 경도 난청만 있어도 적극적으로 보청기를 착용해 인지 기능을 유지하려는 인식이 강하지만, 국내나 아시아권은 여전히 ‘이 정도면 괜찮다’며 사용을 미루는 경향이 크다. 문제는 난청이 방치될수록 점점 악화된다는 점이다. 초기부터 관리하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이미 청력과 뇌의 청각 처리 기능이 크게 저하된 후 착용을 시작하면 회복이 어려워진다.”
― 난청은 고령층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어떤가.
“맞다. 과거에는 난청 관리가 65세 이상에 집중됐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어폰 사용, 산업 소음, 생활 소음 등이 늘어나면서 40·50대에서도 후천성 난청이 많아졌다. 특히 청소년들도 이어폰 볼륨을 과도하게 높여 듣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는 난청 연령대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부 연구에서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난청 초기 증상이 발견되고 있다. 물리적 자극이 누적되면 결국 귀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
“예전부터 ‘보청기의 날’ 행사, 캠페인 등 여러 활동을 했지만,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해 큰 성과를 내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협회 차원에서도 산업 발전과 난청 인식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난청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손실과도 연결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매우 높은데, 난청이 있는 고령층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사회활동 참여율이 현저히 낮다는 데이터가 있다. 이로 인해 사회복지 비용이 증가하고, 특히 치매와의 연관성도 크게 지적된다.”
“난청을 방치할수록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로 증명됐다. 난청을 줄이는 것이 국가적 비용 절감은 물론 개인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점에서 난청 예방과 조기 관리, 보청기 착용은 단순한 산업 이슈가 아니라 국가적 아젠다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본다.”
― 보청기 기술 측면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가 궁금하다.
“아날로그 보청기는 소리를 단순히 증폭하는 기능이 전부였고, 볼륨 조절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반면 디지털 보청기는 특정 소리만을 선별해 증폭하거나 소음을 줄이고 음성을 선명하게 만드는 등 훨씬 정교한 처리가 가능하다.”
“디지털 보청기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의 청력 상태에 맞춰 ‘맞춤형 조정(피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디지털 보청기를 구매해도 이를 정확히 조정해 주는 전문가가 없다면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이를 ‘피팅(fitting)’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순히 볼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청력 검사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세팅을 맞추는 작업이다.”
― 피팅의 중요성에 비해 국내 상황은 어떤가.
“해외 선진국에서는 피팅 비용을 별도로 받고, 그 비용으로 전문 장비와 인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 피팅을 무료 서비스로 간주한다. 저가 경쟁으로 흐르게 되면 장비에 투자하지 못하고, 결국 그 피해는 사용자에게 돌아간다.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제대로 된 피팅을 받는 것이 결국 사용자에게 이익이다. 아무리 고가의 보청기를 구매해도 전문가의 세밀한 피팅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기계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인식의 개선과 더불어 전문가의 피팅 서비스도 산업의 선순환 생태계에 중요해 보인다.
“예를 들어 디만트에서 자체 개발한 ‘클린 피팅’ 플랫폼은 단순히 제품 판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조정해 주는 통합형 청각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업계 전체가 함께 움직이기에는 아직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 작은 회사 하나가 사회 전체의 문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한국형 청각 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국내 청각산업 환경에 어떤 변화를 느끼는가.
“국내 청각산업의 구조적 변화는 아직 크지 않다. 다른 산업들처럼 ‘서비스의 가치를 지불하는 문화’가 뿌리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휴대폰 액정 교체가 무상 서비스였지만, 지금은 사용자의 과실 여부에 따라 유상으로 처리되듯, 청각 분야도 현실적인 비용 체계가 정립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보청기를 사용하는 분들은 종종 ‘나는 약자이기 때문에 무상 보상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산업적 혁신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청각 산업에는 보청기 외에 어떤 영역이 있나.
“청각 산업은 크게 보청기와 청각 진단 장비로 나뉘지만, 실제로는 훨씬 넓다. 청각사, 청능사 같은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이비인후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 등도 모두 청각 산업의 중요한 축이다. 이 때문에 국가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함께 논의하고 발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한국보청기제조사협의회 회장으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는가.
“협회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산업적 이익이 아니다. 난청 관리를 통해 사용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적으로도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한국은 기술과 재정, 인프라를 모두 갖춘 나라다. 청각 산업도 이제 그 수준에 맞춰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난청 인식 개선을 국가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보청기가 치매 예방에 좋다”라는 메시지로는 부족하다.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처가 협력해 청각 건강을 국가 아젠다로 다뤄야 한다.”
“특히 학교에서의 청력 스크리닝 사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학령기 난청이 학습 수월성에 큰 영향을 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시범적으로 진행한 학교 스크리닝 사업에서 고무적인 성과가 나왔다. 이를 확대한다면 사회 전반의 청각 건강 인식도 함께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이익만 대변하지 않고, 국가적 비전 속에서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런 변화를 이끄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우리나라 청각 산업은 아직 선진국들에 비해 발전할 여지가 많다. 이미 국가적 역량도 있고, 기술력도 충분하다. 다만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청각 건강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이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보청기 산업은 단순히 기업의 수익을 위한 산업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분야다. 국가 차원의 중장기 계획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우리나라도 청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